많이 위축되어 있는 후배들을 본다. 나는 00학번이다. 언젠가부터 학생들은 서울대가 새겨져 있는 점퍼를 입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 현상을 상징적으로 바라본다. 이 현상은 예전에는 있었던 일이 아니다. 굳이 서울대
생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서울대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다니지 않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누구
도 범치 못할 스스로의 프라이드가 있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 내 삶에 충실하였다는 것으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살면서 위태로운 순간이 한 순간이 아니다. 한 때 공부를 게을리하고, 심한 방황을 하여서 나는 지금도 고시공부
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프라이드는 아무리 위태로운 순간이 오더라도 나의 추락을 막아준다. 물론 이 프라이
드라는 것은 도피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범치 못할 나의 성역이라는 것은 이렇게 존재하기에 나를 지켜
준다. 그리고 이까짓 고시쯤이야 쟁취해 낼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은, 즉 나의 과거는 현재의 불안을 잊게 만든
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 없어지게 만드는 시대인가. 서울대생마저 자존심을 잃고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은 슬픈 사실이다.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지 못한 열등감이라면 일견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좋다. 설사 그것이 실패라 했다 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최선
을 다해서 사는 사람도 부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부심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열등감을 심는 사회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사회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 투쟁할 수 밖에 없다. 그리
고 나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이것이 젊은이다.
이 곳에서 글을 보면서 외모, 돈, 심지어 집안배경까지 이러한 것들을 부러워 하며 열등감과 자조에 섞인 학생들
을 많이 본다. 외모와 돈, 집안배경 이러한 것은 타고 나는 것이다. 바꿀 수 없다. 물론 20대까지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30대 이후에는 바꿀 수 있다. 내가 돈을 벌여 들이고 배경이 되면 된다. 문제는 꿈과 야망이 있느냐 없느
냐이다. 젊은이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꿈과 야망이다. 이것이 없다면 이미 늙어버린 것
이다. 꿈과 야망을 향한 열정이 곧 젊은이이고 이것은 카리스마를 낳는다. 외모? 아무리 외모가 꽃미남이라도
서른 이후에는 얼굴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품격과 그릇. 그리고
그것이 남자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격이 높은 여자들은 남자를 알아보게 되어 있다. 굳이 격이 낮은 여자를 만
날 필요는 없다. 외모가 아무리 이뻐도 격이 낮은 여자는 천박하다.
사자와 같은 눈을 가지길 바란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자는 풀을 뜯지 않는다. 이것은 이
곳의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에게도 하는 다짐이다. 어떠한 상황과 비참함이 있더라도 굴복
하지 않는 자존심을 갖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학문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길 바란다. 물론 누구나
역량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짧은 인생에 역량이라는 것을 다 쓰고 죽는 인간도 없다. 한마디로 역량이라는 것
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역량을 탓하는 인간치고 최선을 다한 인간도 보지 못하였다.
미성숙하였기 때문에 남이 많이 부럽다. 젊고 어리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열등감을 부끄러워할 필
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에 갖혀 있기엔 시간은 너무 짧고 나이는 금방 먹는다. 한 마리의 사자가 되길 바란다. 사
자의 새끼라도 인간의 손에 길러진다면 한 마리의 가축에 불과할뿐. 지금 내 현실이 비참하다면 강한 발톱과 이
빨을 가질 기회라고 생각하자. 어린애마냥 어리광을 부리지 말자. 우리 모두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
http://www.snulife.com/?mid=love&am ··· type%3Dw
다니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 현상을 상징적으로 바라본다. 이 현상은 예전에는 있었던 일이 아니다. 굳이 서울대
생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서울대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다니지 않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누구
도 범치 못할 스스로의 프라이드가 있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 내 삶에 충실하였다는 것으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살면서 위태로운 순간이 한 순간이 아니다. 한 때 공부를 게을리하고, 심한 방황을 하여서 나는 지금도 고시공부
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프라이드는 아무리 위태로운 순간이 오더라도 나의 추락을 막아준다. 물론 이 프라이
드라는 것은 도피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범치 못할 나의 성역이라는 것은 이렇게 존재하기에 나를 지켜
준다. 그리고 이까짓 고시쯤이야 쟁취해 낼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은, 즉 나의 과거는 현재의 불안을 잊게 만든
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 없어지게 만드는 시대인가. 서울대생마저 자존심을 잃고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은 슬픈 사실이다.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지 못한 열등감이라면 일견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좋다. 설사 그것이 실패라 했다 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최선
을 다해서 사는 사람도 부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부심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열등감을 심는 사회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사회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 투쟁할 수 밖에 없다. 그리
고 나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이것이 젊은이다.
이 곳에서 글을 보면서 외모, 돈, 심지어 집안배경까지 이러한 것들을 부러워 하며 열등감과 자조에 섞인 학생들
을 많이 본다. 외모와 돈, 집안배경 이러한 것은 타고 나는 것이다. 바꿀 수 없다. 물론 20대까지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30대 이후에는 바꿀 수 있다. 내가 돈을 벌여 들이고 배경이 되면 된다. 문제는 꿈과 야망이 있느냐 없느
냐이다. 젊은이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꿈과 야망이다. 이것이 없다면 이미 늙어버린 것
이다. 꿈과 야망을 향한 열정이 곧 젊은이이고 이것은 카리스마를 낳는다. 외모? 아무리 외모가 꽃미남이라도
서른 이후에는 얼굴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품격과 그릇. 그리고
그것이 남자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격이 높은 여자들은 남자를 알아보게 되어 있다. 굳이 격이 낮은 여자를 만
날 필요는 없다. 외모가 아무리 이뻐도 격이 낮은 여자는 천박하다.
사자와 같은 눈을 가지길 바란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자는 풀을 뜯지 않는다. 이것은 이
곳의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에게도 하는 다짐이다. 어떠한 상황과 비참함이 있더라도 굴복
하지 않는 자존심을 갖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학문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길 바란다. 물론 누구나
역량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짧은 인생에 역량이라는 것을 다 쓰고 죽는 인간도 없다. 한마디로 역량이라는 것
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역량을 탓하는 인간치고 최선을 다한 인간도 보지 못하였다.
미성숙하였기 때문에 남이 많이 부럽다. 젊고 어리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열등감을 부끄러워할 필
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에 갖혀 있기엔 시간은 너무 짧고 나이는 금방 먹는다. 한 마리의 사자가 되길 바란다. 사
자의 새끼라도 인간의 손에 길러진다면 한 마리의 가축에 불과할뿐. 지금 내 현실이 비참하다면 강한 발톱과 이
빨을 가질 기회라고 생각하자. 어린애마냥 어리광을 부리지 말자. 우리 모두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
http://www.snulife.com/?mid=love&am ··· type%3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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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고시 시작한 줄 알았다. -_-a
회사 열심히 다녀야지 고시는 무슨....^^
너 같은 사람이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하는데
무슨 그런 과찬의 말씀을...^^
그나저나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구려..^^